아침 여덟 시부터 작업대 앞에 앉아서 원단 조각만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아직 첫 번째 가방은 세상의 빛도 못 봤는데, 벌써부터 그 다음 버전 컬러 조합을 째려보고 있네요. 낫띵메터스라는 간판을 달아놓고 제일 사소한 색깔 고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꼴이 참 웃깁니다.

남들이 보면 대단한 글로벌 브랜드라도 런칭하는 줄 알겠지만, 현실은 먼지 펄펄 날리는 작업실에 쭈그려 앉은 동네 아저씨 한 명입니다. 작은 브랜드들이 왜 툭하면 출시 일정을 미루는지 오늘 아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다 보면 자꾸 쓸데없는 디테일에 꽂혀서 길을 잃거든요. 파란색 바탕에 빨간 스티치가 예쁠까, 아니면 그냥 무난하게 검정으로 갈까. 이딴 상상만 하다가 오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미싱에 바늘이나 제대로 꽂아놓고 이런 고민을 해야죠. 아직 첫 단추도 안 끼웠으면서 샴페인부터 터뜨릴 궁리를 하다니 제정신이 아닙니다. 이래서 1인 기업은 위험해요. 혼자 헛짓거리를 하고 있어도 말려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어이없는 웃음을 삼키며 테이블 위에 어질러진 원단 스와치들을 싹 다 한쪽으로 밀어버렸습니다.

오늘은 진짜 군말 없이 닥치고 미싱 페달만 밟을 겁니다. 일단 세상에 무언가를 툭 던져놔야 그 다음이 있는 거니까요. 머릿속으로만 완벽한 가방은 당장 쓰레기통에 처박고, 삐뚤빼뚤해도 당장 들고 다닐 수 있는 녀석부터 완성해야겠습니다.
근데 아까 잠깐 맞춰본 네이비랑 베이지 조합은 꽤 훌륭했어요. 그건 내일 모레쯤 다시 꺼내봐야지.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