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체주문이 들어왔습니다. 수량은 400개.
처음에는 주문부터 확인했는데, 바로 다음 생각은 ‘이걸 이번에는 혼자 해야 하네’였습니다. 같이 일하던 친구가 출산을 해서 당분간 제가 혼자 움직여야 하는 상황입니다. 평소 같으면 둘이 나눠서 할 일을 혼자 해야 하니 400개라는 숫자가 평소보다 조금 크게 보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단 미리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부족해진 뒤 정신없이 하는 것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나씩 빼두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문제는 미리 한다고 시작한 일이 박스 접기라는 것.
저희 제품은 만들고 끝나는 게 아니라 패키지 조립에도 시간이 꽤 많이 들어갑니다. 박스를 접고 띠지를 넣는 작업은 설명만 하면 정말 간단합니다. 그런데 400개를 생각하면 갑자기 간단하지 않습니다. 하나에 들어가는 시간이 짧아도 그걸 계속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시간이 사라져 있습니다.
오늘이 딱 그랬습니다. 잠깐 박스 좀 접어두려고 시작했는데 계속 접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만 더 해두자’ 하다가 또 조금 하고, 어차피 꺼내놓은 김에 조금 더 하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가끔은 제가 쿠키를 만드는 사람인지 박스를 접는 사람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제품을 만드는 일만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실제 운영에서는 이런 자잘한 준비 작업이 계속 따라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이런 작업들이 하나하나 시간을 아주 성실하게 가져갑니다.
그래도 400개를 제작하는 날 갑자기 박스 400개를 마주하는 것보다는 지금 조금씩 줄여놓는 편이 낫겠죠. 그렇게 생각하면서 오늘 할 만큼은 접었습니다.
오늘도 박스 접다가 집에 갑니다.
그리고 내일의 저는 아마 다시 이어서 접겠죠. 아직 꽤 남았습니다. 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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